고타마씨의 가르침 2
긴글 스킵하실 분들을 위해서 요점만 먼저 말합니다.
불교는 과학적 문제해결방법이다.
유위법이란 것의 위(爲)는 짓는다는 뜻입니다. 업(業)과 동일한 뜻입니다. 따라서 유위법은 "사람이 지어낸 것", "인위적인 것"을 뜻합니다. 인위적인 것이란 관습, 종교, 국가, 도덕 등등을 말합니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내용과 같은 내용입니다.
따라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로전 응작여시관"의 뜻은 "종교, 관습, 국가, 법률 등등의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창조물은 실존하지 않는 것이니 지나치게 속박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2. 깨달음의 정체에 대해서는 원각경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눈병이 난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꽃을 보거나 둘째 달을 보는 것같다. 실제로 허공에는 꽃이 없지만 눈병난 사람은 헛것을 보고 착각에 집착하여 허공의 성품은 물론 정작 꽃이 나는 곳도 모르는 것과 같다. 이러한 그릇된 집착으로 말미암아 나고 죽음에 헤메이니, 그러므로 무명이라 한다. 그렇지만 무명이라는 것은 실제로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꿈을 꾸는 사람이 꿈 속에서 본 것이 꿈 깬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중생들도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 헤메게 되는데, 원각을 닦는 이는 그러한 본래 없음을 알게 되어 헛도는데서 벗어나게 된다."
해석: 국가, 법률, 종교, 경제 등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불교의 집착이라는 말은 상상의 창조물을 물리적으로 실제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뜻이지 지금 현재의 집착의 뜻과는 다릅니다.
"모든 중생들의 가지가지 헛것들도 모두 원각의 묘한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 마치 헛꽃이 허공에 있는 것 같으니 헛꽃이 비록 없어져도 허공은 없어지지 않듯 중생의 마음에 나타난 것들이 사라져도 그 원각의 마음 자체는 변함없다. 그러므로, 헛것인 줄 알면 곧 그를 떠남이라, 별다른 방편을 지을 것 없으며, 헛것이 없어지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라, 따로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없으니, 이렇게 원각을 이루라."
해석: 산타클로스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인줄 알면 애초에 산타클로스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국가, 법률, 종교, 경제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인 줄 알면 애초에 그것이 없었던 것임을 알게 되고 그러면 이미 깨달은 거라는 겁니다. 따라서 번뇌를 녹인다느니 잡념을 없앤다느니 하는건 불교와 전혀 관계없는 얘깁니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구별할 줄만 알면 그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경전에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실은 사실로 보고 의견은 의견으로 "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3. 불성이라는 것은 깨달음의 씨앗, 가능성이라고 해석합니다. 깨달음이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여 인과관계를 바르게 규명하는 것이니 불성이라는 것은 지금 말로 이성을 뜻합니다.
4. 불교에서 변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각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에 따라서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통 이것을 구별하지 않아서 혼동이 일어 납니다.
불교의 요지는 생각에 따라 변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과 생각에 따라 변하는 주관적 의견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이치를 따져보니 실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이더라 라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연기, 인연 같은 말은 산소, 타는 물질, 발화점 이상의 온도라는 조건이 만나서 연소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현상이라는 말의 불교적 표현일 뿐입니다.
또한 생로병사라는 것은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억지로 부정해봤자 괴로움만 커질 뿐이라는 겁니다.
5. 불교가 상상의 창조물을 모두 부정하진 않습니다. 괴로움을 없애는데, 즉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상상의 창조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통 법규는 상상의 창조물이지만 교통사고를 줄임으로써 괴로움을 줄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이용해야죠. 하지만 이 교통법규를 고정불변의 사실로 알면 더 좋은 교통법규를 만들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상상의 창조물도 우리의 이익에 따라서 얼마든지 쓰되 이익에 따라서 언제든지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이 유위법(상상의 창조물)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6. 무위법은 간단히 말해서 자연법칙을 말합니다. 생로병사는 자연법칙이어서 우리가 바꿀 수 없습니다. 불법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친다고 오해하는 이유가 생각에 따라 변하는 것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입니다.
7. 불법이 문제해결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해결방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문제들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바른"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두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 댓가로 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박장에 가서 도박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도박장에서 돈을 잃을 수 도 있지만 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두번째 방법이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팔정도에서 정(正, 바른)이라는 말이 쓰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8. 모든 것이 명료하기 때문에 갈팡질팡하며 헤매지 않습니다. 갈팡질팡하며 헤매는 마음을 번뇌라고 합니다. 따라서 불법은 대부분의 고(苦)를 해결하지만 모든 고(苦)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맞는지 몰라 갈팡질팡 헤매는 마음(번뇌)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이 없다', '의혹이 없다'는 표현을 쓰는겁니다.
9. 선불교는 왜곡된 불교입니다. 어떻게 해서 왜곡되었는지는 유튜버 1분 과학의 '신이 되는 법'이라는 영상을 보시던가 유튜브에서 "박문호 깨달음"이라고 검색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가 자아를 만들어내는데 몸의 감각을 통합하는 기능이 중요한데 이 기능을 수행하는 뇌의 부위를 default mode network 줄여서 DMN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DMN이 비활성화되거나 간섭이 일어나면 뇌속의 몸의 이미지와 실제 몸의 차이가 생겨서 유체이탈을 경험한다거나 아니면 몸과 외부 세계의 경계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DMN은 전두엽에서 강하게 신호를 보내 비활성화 시킬 수도 있고, 약물로 비활성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두엽에서 강하게 신호를 보낸다는건 강렬한 기도나 명상, 화두참선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록에 "허공이 마음이다"라느니 "온 우주와 내가 하나다"라는 둥의 소리를 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선불교는 왜곡된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